◇ 미란다의 디자인에서 보여지는 천공과 천체의 이미지

창업자 荻原彰는 로켓엔진을 개발한 과학자로, 천체매니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미란다 안에는 '천체'를 생각하게 하는 이미지가 숨겨져있습니다. 그 몇가지를 들여다봅시다.


[패키지와 카메라]
흰 구름이 떠오르는 푸른 하늘에서부터 짙은 감색의 별이 펼쳐진 하늘까지, 이것은 로켓의 창문으로부터 본 성층권의 이미지일까요? 그리고 SENSOREX에서 보여지는 심볼릭한 별 디자인, 이미지에도 주목해주세요. ("남십자성을 심볼라이즈했다"고 써놓은 것도 있지만 메이커와 관련된 자료에서는 근거가 발견되지 않음.)

미란다, 그 이름의 유래는 미란다 발표 당시 荻原씨 스스로 집필한 사진공업지 기사에 의하면 '그냥 (어감이 좋아서)' 이라고 합니다. 荻原씨는 미란다와 천문의 관계를 명시한 적은 없었지만, 그 무렵은 정확히 태양계 천왕성에 새로운 위성이 발견(1948년)되었던 때입니다. 그 위성의 이름은 Miranda, 재미있는 우연입니다. 탐사선 보이저2호가 보내온 위성 미란다의 영상은 천문학자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우 독특하고 기괴한 표면을 가진, 실로 유니크한 천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천왕성의 위성은 티타니아와 오베론(1787년), 아리엘과 움브리엘(1851년) 및 다양한 지형을 가진 미란다(1948년). 이후엔 모두 탐사선 보이저2호(1985년~1986년)에 의하 발견되었습니다.

천왕성의 위성 미란다는 세익스피어의 작품 '폭풍우'의 주인공, 밀라노대공 프로스페로의 딸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미란다의디자인으로 보여지는 천공과 천체의 이미지

創業者、荻原彰はロケットエンジンの開発をした科学者で、天体マニアでもあったと言われています。ミランダの中には「天体」を思わせるイメージが隠されています。そのいくつかをピックアップしてみましょう。

[パッケージとカメラ】
白い雲が浮かぶ青空から濃紺の星空へ、これはロケットの窓から見た成層圏のイメージでしょうか? そして、SENSOREXにみられるシンボリックな星のデザイン・イメージにも注目してください。(“南十字星をシンボライズした”と書かれたものもありますがメーカーの関連する資料では根拠は未発見)

ミランダの命名の由来は、ミランダ発表時の荻原氏自ら執筆の写真工業誌の記事によると、「なんとなく(語感がいいから)」とあります。荻原氏はミランダと天文の関係を明示した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しかし、ちょうどその頃太陽系の天王星に新たに衛星が発見(1948 年)されていました。その衛星の名はMiranda、おもしろい偶然です。 探査機ボイジャー2号が送ってきた衛星ミランダの映像は天文学者を唸らせました。というのも、とても独特で奇怪な表面をもった実にユニークな天体だったのです。これまで発見された天王星の衛星はチタニアとオベロン(1787年)、アリエルとウンブリエル(1851年)及び多様な地形を持つミランダ(1948年)。以降はすべて探査機ボイジャー2号(1985年~1986年)により発見されました 。 

天王星の衛星のミランダはシェークスピアのテンペストの主人公、ミラノ大公プロスペローの娘の名からとられています。

◇ 미란다 연구사


미란다 연구는 1987년 아사히소노라마 발행의 카메라리뷰 클래식카메라 전과지에서 특집으로 다뤄졌던 日比 孝 의 "미란다 카메라의 모든 그 역사" 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특집 이전에 체계화 된 기록은 없습니다. 가장 처음 체계적으로 미란다의 전모를 저술한 자료로 전체적인 미란다 연구에 매우 영향력이 있었던 기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日比 孝에 의한 "미란다 카메라의 모든 그 역사"를 보충, 검증하는 형태로 MSJ=미란다 연구회는 진행되어왔습니다.

다음호에서는 高島 鎮雄에 의해 "체험적 일안레플렉스진화론 15 미란다와 그 주변"이 쓰여졌습니다. 그 이후 白井達夫의 "환상의 카메라를 쫓아 7 훼닉스", 萩谷 剛의 "훼닉스 발견되다!!" 가 연달아 발표되어, 한마디로 미란다에 대한 중요한 기사는 대부분이 미란다 도산 후 비교적 빠른 시기에 발표되었습니다.

그 후 10년 정도가 지나 田中長徳가 일본카메라에서 쓴 연재 칼럼, "명기예찬'으로 미란다C와 T가 다루어졌습니다. 미란다를 다룬 이 칼럼은 명기예찬 중에서도 매우 인상적인  한편으로 (일본에서는) 제2의 미란다 붐(?)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산발적이었으나 카메라지 곳곳에서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1998년이 되어 학연의 잡지, CAPA별책 카메라GET!에서는 산악사진가 三宅 岳의 나가노현 이케다시의 공장자취 리포트와 이미 건물은 없어졌으나 코마에시의 본사자취 리포트가 있어 매우 인상깊은 기사였습니다. 이 외, CAPA 별책 카메라 GET!에서는 島田 和也가 미란다를 종종 다뤘습니다.

이 무렵에는 日比 孝의 “미란다 카메라의 모든 그 역사"가 발표된지 이미 20년이 지나 카메라리뷰는 절판되어 헌책도 고가이며 손에 넣기도 어려워, 좀처럼 쉽게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03년 갑자기 '카메라스타일'지에서 미란다에 관련한 드문 사진과 인터뷰가, 이어서 아사히소노라마 발행의 '카메라리뷰클래식카메라전과 No.64'에도 미란다 특집이 실렸습니다. 이 '카메라스타일 No13'에서는 간다라井上에 의해 '미란다를 만든 남자들'이란 타이틀로 미카미, 미란다를 설계한 大塚新太郎의 최신 인터뷰등 흥미로운 기사가 많이 실려 아마 1954년 사진공업지 기사등을 출처로 했겠지만, 매우 내용있는 기사로 오랜만에 미란다팬들을 일어서게 한 좋은 기획이었습니다.

그 카메라스타일지 바로 뒤, 이상하게도 뒤쫓듯 나오게 된 것이 '클래식카메라전과No.64' "미란다의 계보"에서는 萩谷剛의 신작기사로 지금까지 알려져있지 않았던 관계자의 이름이나 관계성에대해서도 언급되어있고 이것 또한 미란다팬들은 크게 열광했습니다. (미란다카메라의 사원집합사진은 양쪽에서 게재되었으나 자세히 보면 다른 컷입니다!) 이 클래식카메라전과에서는 20년만의 미란다 대부분의 모델과 렌즈, 시작품등이 게재되었지만 안타깝게도 日比孝의 "미란다 카메라 모든 그 역사"에 있었던 '카메라의 생산연도와 타입별 연표'가 없었습니다. 미란다-T의 파인더시야율이 명확히 쓰여져있어 96%가 되어있습니다.

이어서 같은해 출판된 것이 豊田堅二著 CAPA특별편집카메라GET! 슈퍼무크 11" 입문 금속 카메라 올가이드"에서는 국내에서 판매, 또는 발표가 확인되었다고 생각되는 미란다의 일안레플렉스의 모든 사진이 게재되어있습니다. 이 무크에는 저희 연구회도 협력하였습니다. "입문 금속 카메라 올가이드"는 카달로그처럼 미란다의 각종 모델을 볼 수 있는 훌륭한 책입니다. 그러나 스펙상의 오류가 매우 많아 자료로서는 문제가 있습니다. 각 기종의 설명은 훌륭하지만 이 점은 유감스럽습니다.

2004 9/25 『카메라리뷰클래식카메라전과』No73 山下浩樹 [국산 최초의 펜타프리즘식 일안레플렉스]"미란다T/센소렉스"
클래식카메라의 사용법, 이라는 특집대로 각각 사용법과 해설이 실려있습니다. 집필은 본 사이트 주이나 소심하기 때문에 오류가 있는거 아니야? 하고 전전긍긍이었다는.

2006/01『사진공업』Vol64 No681 根本泰人 의 "미란다T"  
早田카메라에서 수리된 오리온미란다와 즈노우셋트에 대해 쓰여진 것. 새로운 부분으로는 미란다의 명칭에 대한 해설이 있어, 미란다에는 라틴어로 '칭찬할 만한 여자아이'란 의미도 있습니다.(존칭생략)

◇ 미란다 연구사

ミランダ研究は1982年の朝日ソノラマ刊 カメラレビュー クラシックカメラ専科誌で特集された日比 孝 の“ミランダカメラのすべてとその歴史 ”から始ります。それ以前、体系化された記録はありません。最初に体系的にミランダの全貌を著した資料として世界中のミランダ研究に非常に影響力があった記事と言えます。この、日比 孝による“ミランダカメラのすべてとその歴史 ”を補足、検証して行く形でMSJ=ミランダ研究会は進められてきました。

翌号では高島 鎮雄によって“体験的 一眼レフ進化論 15 ミランダとその周辺”が書かれました。それから白井達夫の“幻のカメラを追って 7 フェニックス”、萩谷 剛 が“フェニックス発見さる !!”と立て続けに発表され、つまり、ミランダについての重要な記事はミランダ倒産後のわりと早い時期にほとんど発表されていました。

それから10年ほど経って、田中長徳の日本カメラで連載のコラム、“銘機礼賛”でミランダCとTが取り上げられました。ミランダを取り上げたこのコラムは名機礼賛のなかでも大変印象的な一遍で、(日本では)第二のミランダブーム(?)きっかけとなったと考えています。以降、散発的にでしたがカメラ雑誌各紙に記事が見られます。

1998年になって学研の雑誌、CAPA別 冊 カメラGET! では山岳写真家の三宅 岳 の、長野県池田市の工場跡のレポート、すでに建物は無くなっていましたが、狛江市の本社跡レポートがあり大変印象深い記事でした。この他、CAPA別 冊 カメラGET! では島田 和也 がミランダを度々取り上げていました。
 

この頃には日比 孝の“ミランダカメラのすべてとその歴史 ”が、発表からすでに20年経っておりカメラレビューは絶版誌となると古本も高価で手に入れにくく、簡単に見ることがなかなか出来なくなっていました。 

2003年、突然「カメラスタイル」誌上でミランダに関する珍しい写真とインタビューが、次いで朝日ソノラマ刊 「カメラレビュー クラシックカメラ専科 No.64 」にもミランダ特集が出されました。この「カメラスタイル No13」ではガンダーラ井上 による“ミランダを創った男たち”と言うタイトルで、ミカミ、ミランダの設計をした大塚新太郎の最新インタビューなど興味深い記事が多く掲載され、おそらく1954年の写真工業誌の記事などを出典としながらも大変内容のある記事で久々にミランダファンを涌かせた好企画でした。
 

そのカメラスタイル誌のすぐあと、奇しくも追うように出ることとなってしまった「クラシックカメラ専科No.64 」“ミランダの系譜”では、萩谷 剛の書き下ろし記事で、今まで知られていなかった関係者の名前や関係性にも言及していて、これまたミランダファンは沸きに涌きました。(ミランダカメラの社員集合写真は両紙で掲載されていますが、良く見ると異なるカットなのです!)このクラシックカメラ専科では20年ぶりにミランダのほぼすべてのモデルとレンズ、試作品などが掲載されていますが 残念だったのは日比 孝氏による“ミランダカメラのすべてとその歴史 ”にあったような「カメラの生産年度とタイプ別年表」がありませんでした。ミランダ-Tのファインダー視野率が明確に書かれており、96%となっています。 

次いで、同年に出版されたのが豊田堅二著 CAPA特別編集 カメラGET! スーパームック 11 “入門 金属カメラオールガイド”では、国内で販売、または発表が確認されたと思われるミランダの一眼レフがすべて写 真掲載されています。このムックでは当会でも協力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入門 金属カメラオールガイド”はカタログ的にミランダの各種モデルを見る事が出来る素晴らしい本です。しかし、 スペックの記載にあまりにも誤記が多く、資料としては問題があります。各機種の説明文は素晴らしいのでこの点が残念です。
 

2004 9/25 『カメラレビュー クラシックカメラ専科』No73 山下浩樹 [国産初のペンタプリズム式一眼レフ]"ミランダT/センソレックス" クラシックカメラの使い方、という特集の通りそれぞれの使い方が解説が掲載されました。 執筆は本サイト主ですが気がちいさいので誤記があるんじゃないか?と戦々恐々であったそうな。

2006/01『写真工業』Vol64 No681 根本泰人 の "ミランダT"  早田カメラで修理されたオリオンミランダとズノウのセットについて書かれたもの。目新しい部分としてはミランダの名称について解説が有り、ラテン語の感心な女の子の意とあります。(敬称略)

◇ 국산 최초의 5각 프리즘 일안레플렉스를 생산한 벤처기업

● 미란다는 젊은 항공 공학의 연구자가 열린 회사

도쿄제국대학 공학부 항공 학과는 국내에 유일한 항공 공학을 전문에 연구하는 학과로, 엄선의 학생이 모이는 도쿄제국대학안에 있어 해에9 사람 밖에 취하지 않는다고 하는 소수 정예 교육의 학과였습니다.전시하도 있어, 이 학과의 출신자는 나카지마 비행기, 미츠비시중공 등 비행기 메이커에 진행되었다고 말해집니다.미란다카메라의 창업자, 오기와라 창(1920-19XX) 씨는 이 도쿄제국대학 항공 학과 출신으로 해군에게 나아갔습니다.해군으로의 오기와라씨는 간헐 연소(로켓) 엔진을 연구 개발 하고 있었습니다.

종전 직전, 오기와라씨는 최후의 결전 병기의 엔진의 개발을 끝냈던 바로 직후였습니다.이 결전 병기와는 독일의V1 로켓형 병기를 유인으로 한 것으로, 육지 해군은 합동으로 그 전예산을 이 특공기에 충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이른바 전력 투구 공격, 신 감기에 우리 나라는 미래를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믿을 수 있습니까?그런 궁극의 선택을 재촉당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1945 해, 누구나가 알고 있도록(듯이) 우리 나라는 연합군에 져 국토는 점령되었습니다.전쟁이 끝나 일본은 항공기 관련, 제트, 로켓의 연구를 점령군에 의해서 금지됩니다. 항공 학과는 폐쇄되어(1954 년( 쇼와29 년) 에 재개), 이 때문에 항공기, 특히 제트 엔진, 로켓의 분야에서는 일본은 세계의 레벨로부터 크고 후퇴 당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져 전문 분야의 길이 닫혀져 버린 것, 파멸적인 병기의 개발을 해야 했던 것, 여러가지 사건이 젊은 항공 공학 연구자의 인생관에 영향을 준 것은 상상에 어렵지는 않습니다. 오기와라씨는 전후, 군관련의 일 개시의 행사가, 원래 좋아했던 그림과 사진에 관련되는 카메라에 관련한 사업을 새롭게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리온 정밀 기계로, 후에 미란다카메라가 되는 회사입니다. 

◇ 국산 최초의 5각 프리즘 일안레플렉스를 생산한 벤처기업

●ミランダは若き航空工学の研究者が開いた会社

 東京帝國大学工学部 航空学科は国内に唯一の航空工学を専門に研究する学科で、選りすぐりの学生が集まる東京帝國大学のなかにあって年に9人しか取らないという少数精鋭教育の学科でした。戦時下のこともあり、この学科の出身者は中島飛行機、三菱重工など飛行機メーカーへ進んだと言われます。ミランダカメラの創業者、荻原 彰(1920-19XX)氏はこの東京帝國大学 航空学科出身で海軍へすすみました。海軍での荻原氏は間歇燃焼(ロケット)エンジンを研究開発していました。
 

終戦直前、荻原氏は最期の決戦兵器のエンジンの開発を終えたばかりでした。この決戦兵器とはドイツのV1ロケット型兵器を有人にしたもので、陸海軍は合同でその全予算をこの特攻機に充てることになっていました。いわゆる体当り攻撃、カミカゼに我が国は未来を託すことに決定したのです。信じられますか?そんな究極の選択を迫られた時代があったのです。
 

1945年、誰もが知っているように我が国は連合軍に敗れ国土は占領されました。戦争が終わり日本は航空機関連、ジェット、ロケットの研究を占領軍によって禁止されます。航空学科は閉鎖され(1954年(昭和29年)に再開)、このため航空機、特にジェットエンジン、ロケットの分野では日本は世界のレベルから大きく後退させられることとなりました。

戦争に負けて専門分野の道が閉ざされてしまったこと、破滅的な兵器の開発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と、様々な出来事が若き航空工学研究者の人生観に影響したことは想像に難くありません。荻原氏は戦後、軍関連の仕事始めますが、もともと好きだった絵と写真に関わるカメラに関連した事業を新たに興すことになりました。それがオリオン精機で、後にミランダカメラとなる会社です。

◇ 오리온 정밀 기계 (으)로부터 오리온 카메라, 그리고 미란다카메라에

오기와라씨는1948 해에는 이제(벌써) 보도용 카메라, 기재의 개조등을 다루고 있어 개조를 위한 설계, 특허 취득을 주로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회사명은 자신의 아이들과 같이 천체에 연관된 이름, 오리온을 씌워“오리온 정밀 기계 산업 유한회사(1948-1955 )”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제조에는 일본 광학의 현미경 제조의 협력 공장이 맞아, 카메라 수리의 제일인자인 누쿠이 레버러토리 와 당시 , 긴자의 마츠시마 안경점에 카메라점을 짓고 있던 미카미와의 교류로 사업은 발전해 갔습니다.

당시로서는 뛰어난 공작 정도에 의해서 질의 좋은 제품이 만들어져 특히 설계에 대해 우리 나라의 최고봉의 두뇌가 모여 있던 것이기 때문에 나쁠 것이 없습니다.

원래 카메라를 좋아하고 시작한 사업이므로 물건이 좋게 안 제품이 만들어 내지고 있었고, 뛰어난 기술자가 서포트하는 오리온 제품은 당시의 다다미 4장 반 메이커나 작은 공장의 제품과는 구별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란다의 설명 전에, 우선 미란다의 전진, 오리온 정밀 기계 산업 유한회사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먼저 말한 것처럼 오기와라씨의 벤처 비즈니스로, 당초는 도쿄, 코쿠분지에 있던 집으로부터 스타트해, 후에 쿄도우에 지어진 자택에 회사를 옮긴 것 같습니다. 전후, 기업의 옆연구자로서도 도쿄대학의 항공 공학 연구실로 돌아왔습니다만, 아직 항공 관련의 연구는 금지되고 있어 거기서도 심심풀이에 카메라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도쿄대학의 항공 공학 연구실 시대 이후, 초기 미란다의 대부분의 기종의 설계자인 오오츠카 신타로 (나고야 대학 명예 교수 원공학부 항공 학과 원동기 강좌) 씨(1921-2005 )(이)가 파트너가 되어, 콘택스/ 라이카의 마운트에 호환성을 갖게한 「커플러」를 개발했습니다.이것은 최근 또 만들어져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만 오리지날은 오리온 정밀 기계의 제품입니다.오리온 정밀 기계 이외에는 미카미, 누쿠이 레버러토리 에서도 제조 판매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이 외 , 라이카를 리프 카메라로서 촬영 가능하게 하는 「미락스」라고 빌로우즈 「포카벨」, 미락스를 정상으로 하는 5각 프리즘등의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요즘부터 목표는 일안레플렉스 제작에 굳어진 것 같고,1954 해에 드디어 프로토 타입 일안레플렉스 「훼닉스」를 제작, 이것이 카메라 산업계를 향한 큰 애드벌룬이 되어 미란다의 제조로 연결되어 갑니다.
 

이 당시 , 일본에서 최초로 5각 프리즘 일안레플렉스를 내기 위해서 개인의 발명가로부터 대기업까지가 격전을 벌이고 있어 카메라 종이 위에서는 매월과 같이 환상의 시작품이 신제품 뉴스의 한쪽 구석에 있었습니다.전혀 제품화되지 않는 5각 프리즘 일안레플렉스는”도깨비와 5각 프리즘 일안레플렉스는 같은 것, 왜냐하면 정말로 나왔던 적이 없는“ 등과 야유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었으므로 실제로 훼닉스가 제품화되어 「미란다 T 」로서 판매되었을 때는 대단한 놀라움과 환영을 가지고 화들주위 데뷔를 장식했습니다. 

쇼와 30년대의 잡지 기획으로 카메라 메이커 사장을 모은 좌담회에서는 「(5각 프리즘 일안레플렉스를) 일본에서 최초로 내는 것이 중요했다」와 미란다T 발매 당시의 치열한 제일 먼저 도착 경쟁 시대를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발매된 미란다에는 카메라 수리의 제일인자로, 아사히카메라의 진단실에서도 활약한 누쿠이제길 , 긴자의 마츠시타 안경점(현, 긴자 니콘 살롱의 장소)에서 카메라 판매를 하고 있던 현미카미(코우지마치의 빌딩은 이전)가 판매를 다루는 등, 미란다의 창세기에는 전후의 사진 진기 산업계 여명기의 쟁쟁한 멤버가 관련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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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オリオン精機 からオリオンカメラ、そしてミランダカメラへ

 
荻原氏は1948年にはもう報道用カメラ、機材の改造などを手がけており改造のための設計、特許取得を主にしていたようです。
会社名は自分の子供たちと同じように天体にちなんだ名前、オリオンを冠して“オリオン精機産業有限会社(1948-1955)”と名付けられました。

製造には八州光学の顕微鏡製造の協力工場があたり、カメラ修理の第一人者であった貫井ラボと、当時、銀座の松島眼鏡店にカメラ店を構えていたミカミとの交流で事業は発展して行きました。

当時としては優れた工作精度によって質の良い製品がつくられ、特に設計においては我が国の最高峰の頭脳が集まっていたわけですから悪いはずがありません。

そもそもカメラが好きで始めた事業なのでモノのよく判った製品が作り出されていましたし、優れた技術者がサポートするオリオン製品は当時の四畳半メーカーや町工場の製品とは一線を画していたと言えそうです。 
 

 ミランダの説明の前に、まずミランダの前進、オリオン精機産業有限会社について述べなければなりません。先に述べたように荻原氏のベンチャービジネスで、当初は東京、国分寺にあった家からスタートし、後に経堂に建てられた自宅に会社を移したようです。戦後、起業の傍ら研究者としても東京大学の航空工学研究室に戻りましたが、まだ航空関連の研究は禁止されており、そこでも手慰みにカメラ製品を作り出していました。
 

東京大学の航空工学研究室時代以降、初期ミランダのほとんどの機種の設計者である大塚新太郎 (名古屋大学名誉教授 元工学部航空学科原動機講座)氏(1921-2005)がパートナーとなり、コンタックス/ライカのマウントに互換性を持たせた「カプラー」を開発しました。これは最近また造られ販売されていましたがオリジナルはオリオン精機の製品です。オリオン精機以外にはミカミ、貫井ラボでも製造販売されていたようです。
 

このほか、ライカをレフカメラとして撮影可能にする「ミラックス」とベローズ「フォカベル」、ミラックスを正像にするペンタプリズムなどの製品が生み出されています。

この頃から目標は一眼レフ製作に固まったようで、1954年にいよいよプロトタイプ一眼レフ「フェニックス」を製作、これがカメラ産業界に向けての大きなアドバルーンとなりミランダの製造へと繋がっていくのです。
 

この当時、日本で最初にペンタプリズム一眼レフを出すために個人の発明家から大企業までがしのぎを削っており、カメラ紙上では毎月のように幻の試作品が新製品ニュースの片隅にありました。一向に製品化されないペンタプリズム一眼レフは”お化けとペンタプリズム一眼レフは同じもの、何故ならホントに出たことが無い“などと揶揄されるほどでした。
 

このような状況であったので実際にフェニックスが製品化され、「ミランダ T」として販売されたときはたいへんな驚きと歓迎をもって華々しいデビューを飾ったのです。 

昭和三十年代の雑誌企画でカメラメーカー社長を集めての座談会では『(ペンタプリズム一眼レフを)日本で最初に出すことが肝心だった』と、ミランダT発売当時の熾烈な一番乗り競争時代を振り返っています。
 

発売されたミランダにはカメラ修理の第一人者で、アサヒカメラの診断室でも活躍した貫井堤吉 、銀座の松下眼鏡店(現、銀座ニコンサロンの場所)でカメラ販売をしていた現ミカミ(麹町のビルは移転)が販売を手がけるなど、ミランダの創世期には戦後の写 真機産業界黎明期のそうそうたるメンバーが関わって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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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에 고전한 미란다

 긴자에 있던(지금도 있다) 마츠시마 안경점의2 층에 있던 마츠시마 안경점 사진부(카메라, 용품의 판매점)의, 현 「미카미」(특수 카메라 기재 메이커)은 미란다의 산 증인의 한 명이다.

이것들, 포카벨, 미락스가 팔려 미란다의 개발자금원이 되었다고 한다. 미락스(Mirax )(은)는 각종 마운트가 선거, 대부분의 카메라에 사용할 수 있었다.빌로우즈측은 독자적인 마운트( 후의 미란다마운트)이다.미락스에는 마운트 아답터로 각사의 마운트의 각종 렌즈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 마운트 아답터도 그대로 미란다마운트에 전용 할 수 있었다.오리온 정밀 기계에서는 카메라 제조에의 준비는 충분히 되어있던 것이다.

미카미는 일찍부터 오리온 정밀 기계의 제품을 다루고 있고, 일시 미란다의 국내 판매원으로도 되어 있었지만, 미란다가 미츠코시 등에도 놓여지게 되면 「미카미와 같은 소매점이 발매원에서는 곤란하다」라고 했다고 한다.그 후의 경위는 수수께끼이지만 「리코 미요시 그룹」의 창시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경영자의 한 명,이치무라 청의 권위자의 한마디로, 리코의 전국에 퍼지는 판매 채널로 미란다가 판매되게 되었다.

1958 년경의 미란다 B의 광고는 리코가 판매하고 있어, 낡은 카메라 매니아에게 미란다의 이야기를 하면 「아―, 리코에서 팔고 있었던 카메라군요∼.」라고, 먼 눈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의 전국 전개도 불과1 년이 채 안되어 소멸해, 국내 판매는 스톱 했다. 4년 후에 국내 판매는 재개되어 비원의 렌즈 자작도 달성했지만 미란다-T 발매시와 같은 매력은 벌써 없고,1960 해에 미란다는 사실상 일본의 마켓으로부터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도-fig-4 , 미란다T 의A.I.C(ALIDE IMPEX CORP) 의 Guarantee 카이 상사는 빠른 시기부터 오리온 정밀 기계의 제품을 다루고 있어 후에 미란다를 매수하지만 결국 도산시켰다.미란다 도산 후도A.I.C (은)는 몇 년인가는 미란다카메라, 렌즈를 판매하고 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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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販売に苦戦したミランダ

銀座にあった(今もある)松島眼鏡店の2階にあった松島眼鏡店写真部(カメラ、用品の販売店)の、現「ミカミ」(特殊カメラ機材メーカー)はミランダの生き証人の一人だ。

これら、フォカベル、ミラックスが売れてミランダの開発資金元となったという。ミラックス(Mirax)は各種マウントが選べ、ほとんどのカメラに使用することが出来た。ベローズ側は独自のマウント(後のミランダマウント)である。ミラックスにはマウントアダプターで各社のマウントの各種レンズが使えたが、このマウントアダプターもそのままミランダマウントに転用出来た。オリオン精機ではカメラ製造への準備は十分出来ていたわけである。

ミカミは早くからオリオン精機の製品を手掛けていて、一時ミランダの国内販売元にもなっていたが、ミランダが三越などにも置かれるようになると「ミカミのような小売店が発売元では困る」といわれたという。その後の経緯は謎だが「リコー三愛グループ」の創始者、戦後日本を代表する経営者の一人、市村 清の鶴の一声で、リコーの全国に広がる販売チャンネルでミランダが販売されることになった。

1958年頃のミランダBの広告はリコーが販売しており、古いカメラマニアにミランダの話をすると「あー、リコーで売ってたカメラね~。」と、遠い目をされたものである。

しかし、せっかくの全国展開もわずか1年足らずで消滅し、国内販売はストップした。 四年後に国内販売は再開され悲願のレンズ自製も達成したがミランダ-T発売時のような魅力はすでに無く、1960年にミランダは事実上日本のマーケットから消えていたのである。 

右図-fig-4、ミランダTのA.I.C(ALIDE IMPEX CORP)のギャランティカード
この商社は早い時期からオリオン精機の製品を手掛けていて後にミランダを買収するが結局倒産させた。ミランダ倒産後もA.I.Cは何年かはミランダカメラ、レンズを販売していたよう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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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란다의 매력이란 무엇입니까?

니콘, 캐논의 국산 고급기, 그리고 라이카, 트이스···. 이것들은 소유하는 기쁨, 스테이터스도 있어, 무엇보다도 그 자체가 뛰어난 렌즈와 메카니즘에 매료된 팬은 많은 일이지요. 이 외, 국산의 카메라 메이커나 해외의 저명 메이커의 카메라 속에도, 뛰어난 광학 성능을 여러가지로 말해져 전설이 된 기종도 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미란다는 어떨까요? 

미란다는1955 해, 현대에 연결되는 전후의 국산 카메라 여명기에 개발된 일안레플렉스로 매우 낡은 카메라입니다만, 초부터 완성도가 높고, 시행 착오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곳도 별로 없다고 하는, 어느 의미 재미가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카메라였습니다.

미란다는 「설계, 기술의 미란다」라고 불렸던 시대도 있었습니다만, 유감스럽지만, 성능에 대해 성실하게 말해진 것은 매우 적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 뿐만 아니라 퍼블릭 이미지로서의 미란다는 「국산 최초의 5각 프리즘 일안레플렉스」라고 하는 것 이외는, 어느 쪽인가 하면 네가티브인 평가도 많은 것이 아닐까요?

그 이유를 찾아 봅시다.

미란다의 발매 후, 순식간에 일본의 유력한 대메이커가 빠짐없이 발매한 일안레플렉스의 전에, 미란다가 금새 시대에 뒤떨어진 오래된 카메라가 되어 간 것도 거절할 수 없습니다. 또, 당시의 상황을 조사하고 있으면 전쟁 전부터 있던 기존 카메라 메이커나 단체로부터의 신흥 메이커에의 압력도 있던 것처럼 생각됩니다.예를 들어 일시적으로 수출에 전념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등도 「외화 획득을 위해 신흥 카메라 메이커는 국내 판매는 아니고 수출에 중점을 둘 수 있다」라고 한 약간 기묘한 시달이 있던 것 같고, 당시의 미란다가 놓여져 있던 상황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아는데 있어서는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또, 「고장난다」라고 하는 풍문은 미란다에의 평가가 좋지 않은 하나의 요인으로서 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슬플까 진실하고, 기종에 따라서는 가녀린 구조가 경년의 사용에 의해서 비참한 결과를 부르고 있습니다.대부분은 기어의 씹어 포함과 같이 단순한 고장입니다만, 부동이 되기 쉬운 기종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살아 남고 있는 대부분의 미란다가 촬영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일도 잊어 갖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특히, 「센소렉스」는 매우 튼튼하고,30 연이상 경과한 기체도 거의 가동하고 있고 미란다의 5각 프리즘에는50 해를 거쳐도 검게 부식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 ミランダの魅力とは何でしょうか?

ニコン、キヤノンの国産高級機、そしてライカ、ツァイス・・・。これらは所有する喜び、ステータスもあり、何よりもそれ自体の優れたレンズとメカニズムに魅了されたファンは多いことでしょう。 この他、国産のカメラメーカーや海外の著名メーカーのカメラのなかにも、優れた光学性能を様々に語られ、伝説となった機種も少なくありません。
しかしミランダはどうでしょうか? 

ミランダは1955年、現代に繋がる戦後の国産カメラ黎明期に開発された一眼レフで非常に古いカメラなのですが、はじめから完成度が高く、試行錯誤の部分といえるようなところもあまり無いという、ある意味面白味に欠けると感じるほどの完成度をもったカメラでした。

 ミランダは「設計、技術のミランダ」と呼ばれた時代もありましたが、残念ながら、性能について真面目に語られたことは非常に少ないと言えます。それどころかパブリックイメージとしてのミランダは 「国産初のペンタプリズム一眼レフ」ということ以外は、どちらかというとネガティブな評価も多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その理由を探ってみましょう。

ミランダの発売後、瞬く間に日本の有力な大メーカーがこぞって発売した一眼レフの前に、ミランダがたちまち時代遅れの古びたカメラになっていったことも否めません。また、当時の状況を調べていると戦前からあった既存カメラメーカーや団体からの新興メーカーへの圧力もあったように思えるのです。たとえば一時的に輸出に専念せざるを得なかった理由なども『外貨獲得のため新興カメラメーカーは国内販売ではなく輸出に重点を置け』といったやや奇妙なおたっしがあったようで、当時のミランダの置かれていた状況がど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か知る上では興味深い部分です。

また、「故障する」という風評はミランダへの評価が芳しくない一つの要因としてあげられると思われます。これは悲しいかな真実で、機種によっては華奢な構造が経年の使用によって悲惨な結果を招いています。ほとんどはギアの噛み込みのような単純な故障なのですが、不動になり易い機種があります。

しかし、現代に生き残っている大半のミランダが撮影可能であるということも忘れ欲しくないところです。特に、「センソレックス」はひじょうに丈夫であり、30年以上たった機体もほとんど稼働していますしミランダのペンタプリズムには50年を経ても黒く腐食したものはほとんどありません。

【】매력이 있는 렌즈【】

미란다 1대 있으면 온 세상의 여러가지 마운트의 렌즈를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는 것도 미란다의 매력의 하나에 올려진다고 생각합니다만, 미란다 전용의 렌즈도 꽤 매력적입니다.미란다는, 당초 자사 생산을 하지 않고, 에키사크타, 아르파, 윌 진등과 같이 렌즈 메이커제 렌즈로 시스템을 만든다고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 렌즈 생산 메이커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밝은 렌즈를 생산하고 있던 즈노우, 그리고 해상력으로 이름을 달린 코와, 메이커명이 숨겨져 미란다의 브랜드로 바뀌고 나서도, 노리타등 등 두근두근하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만큼의 컬렉터 군침도는 메이커의 렌즈 메이커의 제조한 렌즈가 미란다용 렌즈였으니까 희소 브랜드 숭배 컬렉터에 있어서 미란다는 안티테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아사히후렉스에 이어져 미란다도 선편을 자른 소형 일안레플렉스.필름으로부터 디지털 로 변한 현대에 있어도 주류의 소형 일안레플렉스라고 하는 새로운 마켓을 연 사실은 매우 중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04/03/01 -04/09/02 ↑04/12/20 →06/08/30

【】魅力のあるレンズ【】

 ミランダ1台あれば世界中のいろいろなマウントのレンズが使える! というのもミランダの魅力のひとつに上げられると思いますが、ミランダ専用のレンズもなかなか魅力的なのです。ミランダは、当初自社生産をせず、エキサクタ、アルパ、ウィルジンなどのようにレンズメーカー製レンズでシステムを作るというスタイルでした。

そのレンズ生産メーカーを見ると、*世界でもっとも明るいレンズを生産していたズノウ、そして解像力で名を馳せたコーワ、メーカー銘が隠されミランダのブランドに変わってからも、ノリタなどなどワクワクするような名前が出てきます。

これだけのコレクター垂涎のメーカーのレンズメーカーの製造したレンズがミランダ用レンズだったのですから 希少ブランド崇拝コレクターにとってミランダはアンチテーゼとな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なによりも、アサヒフレックスにつづきミランダも先鞭を切った小型一眼レフ。フィルムからデジタルに変った現代にあっても主流の小型一眼レフという新たなマーケットを切り開いた事実はたいへん重要と考え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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