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디는 어둠상자일 뿐이다"


사진가의 사상이나 식견, 세계관, 시선 같은 것을 떠나서입니다.  순수하게 기술적인 측면에서 "좋은사진"을 만드는 요인을 흔히들 내공, 빛, 필름, 렌즈 순으로 꼽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할 때 알파 리플렉스건 니콘 F5건, 대한광학의 코비카건 어둠상자일 뿐이고...

하지만 많지 않은 숫자이나마 이런저런 필름 SLR을 써보니 그렇게 단순하게 이야기 할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완벽한 방진방수나 낮은 기온에서의 원활한 작동, 1/8000 같은 무시무시한 셔터속도, 외우기도 힘든 펑션들... 이런게 아니라도 잘 만들어진 하나의 바디는 보다 나은 사진을 만드는데 분명히 작지 않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X300이 그런 잘 만들어진 카메라라는데 저는 조금의 의심도 없습니다.

 

 

자료 : www.camerapedia.org

50년대말에 SR2로 시작한 미놀타 MF SLR의 역사에서 X300은 거의 마지막에 위치합니다. 프로를 타겟으로 한 최상급 바디시장에서 물러난 미놀타는 프로그램모드와 AEL, TTL플래쉬 기능을 탑재한 막강 SLR X-700을 1981년에 출시했습니다. MF로서는 경이적인 이들 기능을 발판으로 미놀타는 아마츄어 시장의 장악을 시도했지만 불행히도 프로그램모드가 필요한 이들에게 X700은 너무 고가의 제품이었습니다(출시가격 $440).
 


이를 깨달은 미놀타는 미놀타는 X700의 프로그램모드와 노출보정기능을 떼고 보다 보급형에 가까운 X-570을 1983년에 출시합니다. 보급형에 가깝다고는 하나 단순한 다운그레이드는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M모드에서 설정한 셔터값과 적정 셔터값을 LED로 동시에 보여주게 된 것으로 이 특징은 X-300에도 계승됩니다.

X-570에서 보다 다운그레이드 된 모델이 1984년에 출시된 X-300입니다. TTL 플래쉬 기능, 심도미리보기, 파인더상의 조리개값 표시, PC단자, 교환가능한 스크린이 생략되었고 셔터다이얼위에는 커버를 덮어 하나의 셔터값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소한의 기능만 가진, 가볍고 간편한 카메라가 된 것입니다.

 

 

이런 산고를 거쳐 전세계로 수많은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게된 X300이었지만 이미 시대는 바뀌고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생산시설을 동남아시아와 중국으로 이전하는 한편 X600의 포커스에이드 기능을 테스트로 삼아 세계 최초의 AF 카메라인 Maxxum 7000의 1985년 출시를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자동초점장치를 갖춘 이안식 컴팩트카메라들이 보다 작고 편리한 카메라를 원하는 가정용 수요를 대체하고 있었습니다.

AF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나 MF SLR의 수요가 일순에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X370n, X7A, X9 등 X300에 조금씩 변화를 가한 모델들이 생산되다가  어느 날 마지막 미놀타 MF SLR이 공장문을 나서게 됩니다. 아마 쓸쓸한 비라도 내리는 날이었을 겁니다.ㅎㅎ..
 

http://1over60.com/zeroboard/data/camera/1154342499/x300.jpg

 

스펙을 이야기하자면 정말 별로 말할게 없는 X300입니다. 1/1000~4초의 셔터속도, 가로주행식 천셔터막, M모드와 A모드, AEL, 셀프타이머.. 그냥 보통의 SLR입니다. 외관상으로도 -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취향이지만 - XD의 간결한 우아함, SRT와 XE의 고급스러운 견고함, XG-M의 정교하게 배치된 군함부 디자인 등과 비교할 때 한참 뒤쳐진다는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A모드에서 셔터를 눌러보면 역시 X700이 X300에 비해 상위모델이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출시
연도

셔터
속도

노출모드

ISO

노출
보정

심도미리
보기

모터
드라이브

필름백

셀프
타이머

파인더
정보

플래쉬슈
/단자

X-700

1981-?

B,4-1/1000

M, A, P, OTF

12-3200

+/-2EV
AEL

o

G,GP,MD-1

QDB-1
MFB

o

f,S

HOT/FP&X

X-570

1983-?

M, A, OTF

AEL

o

QDB-1
MFB

o

S,f,S

HOT/FP&X

X-300

1984-?

M, A,

x

x

o

S,S

HOT/no

   자료: http://www.subclub.org/minman/slrtable.php

 

하지만 파워스위치를 올리고 파인더로 그  밝고 넓은 화면을 보면서 가볍게 셔터에 손을 대면 빨간 라이트가 점등되고,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어딘가에서 셔터가 경쾌하게 끊길 때 아 나는 사진을 찍고 있구나 하는 행복함이 밀려듭니다. 결과물인 사진보다도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는 것 자체에서 더 기쁨을 느끼는 저에게 X300은 최상의 카메라입니다.

 

방랑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사진보다는 카메라에, 렌즈보다는 바디에 더 애정을 느낍니다. 덕분에 몇 개의 바디를  갖게 되었고, 렌즈보다 바디숫자가 더 많은데다 렌즈 중에 대부분은 바디를 따라온 표준렌즈라는 우스운 구성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어떤 바디도 밝은 렌즈를 끼운 X300의 뷰파인더를 들여다 볼 때 만큼 사진찍기를 즐겁게  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첫 번째 X300에서 XD로 기변을 할 때는 노출보정기능이 없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ISO조정과 AEL을 조합하고, 네가필름의 관용도라는 것을 이해하면 꼭 노출보정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걸 압니다. 플래쉬가 필요할 때는 그냥 오래 써온 캐논의 AF 바디에 E-ttl을 지원하는 TUMAX 플래쉬를 끼웁니다.

 

M모드에서 설정셔터값과 적정셔터값을 보여주는 건 어떻게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광학식 창으로 셔터값을 보여주는 카메라도 많고, 설정 셔터값이 안 보여도 어차피 A모드를 대부분 사용하는 저로서는 큰 문제도 아닙니다. 그러나 M모드를 써야할 때 한 눈에, 그리고 짧은 시간에 두 숫자를 확인하고 피사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보면 정말 멋진 기능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 어느 만큼 찍는 사람이 개입할 것인가는 각자가 다 다를 것입니다. 저는 필름을 끼워서 단단히 감아넣은 다음 장전하고, 초점링을 돌려서 상을 선명하게 만들고, 원하는 조리개값을 맞춰서 셔터를 누르고, 천천히 리와인딩 놉을 돌려 탁 소리를 듣는 만큼 제가 개입하기를 원합니다. X300이 자네는 딱 그만큼일세 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2. 그리고 렌즈와 사진들.

 

렌즈에 대해서는 저는 별로 할말이 없습니다. 색감도 화질도.. 그저 135mm를 마운트하고 X300의 밝은 스크린을 통해 거리를 바라볼 때의 압축된 화면, 어둑어둑한 곳에서 50mm를 끼우고 링을 돌리면 어느순간 환하게 떠오르는 지인의 얼굴 이런 순간이 좋습니다. 광각은 아직 저에게 공부 같습니다.^^

 

   @ Vivitar 24/2.8

 

gold 100

 

    @ nMD28/2.8

 

Provia 100F  

 

   @ nMD 135/2.8

 

Tx 400

 

Tmax 400

 

 

TX 400

 

     @  nMD50.7

 

Reala 100

 

Tmax100

 

Superia400

 

Superia400

 

   nMD50.4

 

Supra 400

 

Reala100

 

Supra400

 

마지막 사진을 갤러리에 올렸을 때 한 분이 "어떤 공간일까, 사진을 찍은 후에 어떤 일이 생겼을까 궁금해지는 사진"이라고 리플을 달아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사진을 찍어오면서 들은 말 중에 가장 고마운 말씀이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3. 캡쳐놀이


 

연예인의 동영상을 좌라락 훑어서 엽기적인 장면을 뽑아내는 캡쳐놀이가 유행이었습니다. 어떤 잘난 연예인이라도 1초를 몇십개의 화면으로 나누고 보면 반드시 흉한 모습이 하나쯤은 나온다는게 핵심.

어두운 밥집이나 술집에서, 상대방이 내 렌즈를 의식했건 아니건 X300으로 1/60초 동안 필름에 노출시킨 스냅들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나 (내가 생각하는)그의 정수가 나타난 화면들을 갈무리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벽에 비친 그림자만 찍고 다니는 요즘, 그 때가 무척 그립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